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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안의 유럽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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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도서명 바바리안의 유럽침략
저자

존 배그넬 베리 지음 | 김성균 옮김

출판사 우물이있는집
정가 14,000원
발행일 2007년 12월 20일
사양 371쪽 | 490g
ISBN 9788989824480

『바바리안의 유럽 침략』은 베리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행한 일련의 강의를 엮어 펴낸 책으로 바바리안들의 침략을 받으면서 서서히 붕괴된 로마제국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서이다.

저자는 바바리안이 흔히 우리가 알듯이, 단지 로마제국을 해체시키고 로마문명을 파괴한 “야만적이고 미개한 이방인 또는 이교도”가 아니라, 나름대로 국가를 건설하고 문명화를 꾀하던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비로마인들이자 비(非)그리스도교도들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중앙아시아를 떠돌던 훈족, 갈리아의 프랑크족, 게르마니아 산림지대에서 살던 고트족과 반달족처럼 곳곳에 흩어져 살던 다양한 종족이나 부족들과의 불안한 정세는 5세기까지 지속되다가 로마제국의 라인 강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이들이 이탈리아로 물밀듯이 몰려들어 저마다 왕국을 건설함으로써 유럽대륙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렇게 로마군대가 어떤 군사적 도발이 아니라, 처음에는 국경 밖에서 수입한 용병들에게 군대를 잠식당하고, 이후에는 군대요직들을 바바리안들이 차지함으로써 무기력해졌다는 새로운 견해로 로마제국멸망연구의 역사적 공백을 메워주고 있는 책이다.

저자 : 존 배그넬 베리 (John Bagnell Bury)

존 배그넬 베리((1861~1927)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저명한 역사학자, 고전학자, 고전문헌학자이다. 그는 1861년 아일랜드 모나핸에서 태어나 포일 대학과 트리니티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였으며, 1893년에 트리니티 칼리지의 근대사 교수를 시작으로 1902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근대사 흠정교수로 임명받아 1927년 로마에서 운명할 때까지 그리스 로마사를 비롯하여 비잔틴사와 19세기 현대사 분야에 방대한 연구성과를 남겼다.

고전학과 문헌학을 고도로 수련한 그는 1880년대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을 발달시키기 시작하여 고대 그리스부터 19세기 교황제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1896~1900년에는 새롭게 발굴한 자료를 토대로 주석과 부록을 덧붙인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The Decline and Fall of Roman Empire)』의 새로운 편집본을 완성했고, 그 후 지성사에 대한 더욱 일반적인 연구로 관심을 확대한 그는 『사상자유의 역사』(1914),『진보이념』(1920)을 집필했다. 그가 죽은 후에 출판된 2권의 강의록 중 한권이 『바바리안의 유럽침략』(1928)이다.

역자 : 김성균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출판 기획과 편집을 병행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명상의 기술』, 『깡패국가』, 『유한계급론』, 『낯선 육체』, 『자유주의의 본질』, 『테네시 윌리엄스』, 『바바리안의 유럽 침략』, 『군중심리』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헤겔의 변증법적 이성과 인정투쟁 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서구 자본주의 욕망에 대한 제3세계의 강박적 욕망과 그 전망」 등이 있다.

    파노라마와 같은 바바리안의 대이동

    우리가 지금까지 이른바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알았던 역사적 사건의 이름이 사실은 “바바리안들의 대이동”이었음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바바리안들 가운데서도 규모가 제일 크고 다수의 하위종족 내지 부족들을 포함하는 종족이 게르만족이었지만, 그들도 결국은 훨씬 더 다양한 비(非)로마인들로 이루어진 전체 바바리안의 일부에 불과했다. 서기 375~575년의 유럽, 그중에서도 특히 로마제국의 주변정세는 그야말로 복잡다단하기 그지없었다. 그만큼 이 시기의 유럽역사는 우리에게 마치 미싱링크(missing link)처럼 다가온다.

    이 시기에 다양한 바바리안들이 대이동을 시작하여 로마제국을 침략하거나 우회하면서 유럽 도처에 정착했고, 그 과정에서 로마제국의 서반부 즉 이른바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촉진했다는 개략적인 사실을 빼면, 그들의 정체나 성격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조차 모른다면 사실들로 이루어진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하여 의미를 파악하기는 더욱 어려운 노릇이다. 『바바리안의 유럽 침략』은 그 공백을 메워주기에 충분한 연구서이다.


    바바리안은 야만적이고 미개한 이교도인가

    로마인들은 바바리안들을 “야만적이고 미개한 이방인들 내지 이교도들”로 간주했다. 그것은 마치 중국인들이 비(非)중국인들을 “오랑캐”로 치부한 경우와 흡사할 것이다. 그들은 단지 “비(非)로마인들”일 뿐이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의 인식을 넘어서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바바리안들을 로마제국을 해체시킨 야만적인 침략자들로 규정했지만, 베리는 바바리안들이 오히려 로마제국의 구성원이 되기를 원했고, 로마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으며, 로마의 군사제도와 정치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보았다. 특히 바바리안들은 로마시민이 되기를 염원했고, 그리스도교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였으며, 그들의 국가와 왕들도 로마제국과 황제의 승인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바바리안들의 목표는 본래 로마제국을 해체시키거나 파괴하는 데 있기보다는, 개인적으로는 로마시민으로 인정받고 국가적으로는 로마제국의 속국 내지 이른바 “연방구성체”로 승인받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바리안들은 처음부터 무조건 로마제국을 침략하고 약탈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요구를 거부한 제국과 황제를 압박하여 그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침략과 약탈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기번은 로마제국이 멸망했다고 보았지만, 베리는 바바리안들이 문명화 내지 로마화(化)되었다고 보았다.


    베리의 역사학적 태도

    베리는 불충분한 자료에 대한 자의적이거나 편파적인 해석을 철저히 경계하고 있다. 랑케처럼 오로지 사실만 이야기해야한다는 외고집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비록 부족하지만 최대한 자료들을 입수하여 면밀히 검토하고 기존의 학설들도 철저히 검증함으로써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과학적이고 엄밀한 해석을 지향하는 베리의 과학적 역사관은 우리로 하여금 이른바 “동북공정”이나 “식민사관” 따위뿐 아니라 심지어 “민족사관”도 재검토해보기를 촉구하는 듯하다.
    그가 수행한 고도로 전문적인 연구와 광범위한 독서는 그가 교수로 임명되기 전에 행한 다양한 강의들을 통해서 구체화되었다. 특히 그는 교수로 재직한 지 2년째 되던 해의 가을학기부터 로마제국이 중세유럽으로 이행하던 서기375년부터 575년에 이르는 약 2세기 동안 이루어진 “바바리안들의 유럽 침입”을 주제로 삼은 강의를 정기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강의들은 훨씬 세부적인 역사자료들과 부합하지 않거나 당시에 출간되던 좀더 방대한 저서들에 포함된 구체적인 주석들이나 참고자료들과 부합되지 않는 내용은 거의 또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강의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새롭게 보강되고 개선되면서 대단히 심오한 연구와 성숙한 사유가 낳은 탁월한 결론들을 생동감 넘치고 인상적인 형태로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