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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와 거닌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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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도서명 톨스토이와 거닌 날들
저자 막심 고리끼 지음 | 한은경 옮김
출판사 우물이있는집
정가 8,500원
발행일 2002년 11월 30일
사양 229쪽 | 372g
ISBN 9788989824107

톨스토이와는 40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30대에 만나 그의 말년을 옆에서 주욱 지켜본 막심 고리끼. 그가 톨스토이와 함께 지내며 나누었던 소소한 일상의 대화들을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민중에 대해, 사람과 사랑, 그리고 존재에 대한 짧은 대화 속에서도, 러시아의 대문호들 답게 철학적 깊이가 느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의 미덕은 대화 속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톨스토이의 인간적인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가령 이런 대화들이다.

"신은 나의 욕망이다 - 신을 믿고자 하는 것도 내 욕망에서 비롯되었을 뿐."
"귀족은 실제로 민중의 피를 착취한다 - 귀족은 건강한 농부의 아내와 관계를 가짐으로써, 농민의 피를 희석시킨다."

"자네는 나를 좋아하나?" "자네 젊었을 때 오입을 많이 했었나?” 이렇게 거침없고 때론 상스러운 말투로 상대를 당혹시키기도 했던 톨스토이의 일상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저자 : 막심 고리키
Максим Горький,본명 : 알렉세이 페쉬코프
고리끼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끼, 체호프와 더불어 러시아가 낳은 대표적인 작가이다.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뻬쉬꼬프이나 문필활동을 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자'라는 뜻의 '막심 고리끼'를 필명으로 사용하였다. 일찍 양친을 여의고 고아가 되어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각지를 방랑하면서 짐꾼, 그릇닦이, 구두닦이, 빵 공장의 노동자 등으로 생활하였다. 독학으로 공부하였으며 짜르 정권 아래서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묘사하여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러시아 혁명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혁명가로서 활동하였으며 제2차대전을 준비하는 파시스트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작품으로 [사람들 속에서] [나의 대학] [밤 주막] [어머니] [고백] 등이 있다.

역자 : 강완구

고려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리끼 문학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프리랜서 및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한국어 논문으로 「창의 모티브를 통한 밤뻘로프의 "오리사냥" 연구」가 있고, 러시아어 논문으로 「젊은 시선으로 바라본 사회 - 빅또르 로조프의 작품을 근간으로」「발뻘로프 작품 속의 주인공들」「틈새에서 온 주인공」이 있다. 역서로 글라드꼬프의 『시멘트』밤뻘로프 단편 전집 『머리끝에서 발끝까지』가 있다.

역자 : 한은경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어학연구소 연구원이며 서울대와 인하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역서로 『메디치 가 이야기』『온 가족이 함께 읽는 신구약 성서 이야기』『르네상스』『논리와 추리의 기호학』『기호의 제국』(공역) 등이 있다.

    고리끼가 본 톨스토이

    이 책은 톨스토이가 가장 아끼던 작가 고리끼가 본 ‘말년의 톨스토이에 대한 회상기’이다. 이 책은 러시아의 가장 저명한 작가에 대한 또 한사람의 가장 저명한 작가의 ‘회상기’일 것이다. 톨스토이는 고리끼보다 40년 연상이었다. 이 책의 기록은 30대의 그가 70대의 톨스토이를 만나서 쓴 것이다.
    고리끼는 톨스토이를 무척 존경했다. 특히 그의 위대함에 감탄하는 때가 많았다. 그 정신세계의 깊이는 끝을 모르겠노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감탄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 그의 행동을 짜증스러워하기도 하고, 그의 견해에 반대하기도 했다. 실제로 고리끼가 완성한 문학세계는 톨스토이의 문학세계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한 위인의 정신세계가 깊고 넓음이 주변사람들과의 조화로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변사람들과의 부조화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톨스토이도 마찬가지였다.

    톨스토이 책에서 볼 수 없는 톨스토이의 매력

    한 작가의 작품이 ‘정신의 산물’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톨스토이의 책을 읽으면 ‘그의 정신세계’를 읽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인간의 매력이라는 것은 ‘정신의 기록’으로만 표출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매력은 행동거지, 미소, 대화하는 말투, 사람을 대하는 태도, 말없이 서있는 뒷모습, 손짓, 사색하는 모습, 습관 등 기록되지 않은 것에서도 풍겨 나오기 마련이다. 그야말로 한 사람의 매력은 ‘온 몸’에서 ‘전면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와 마주서있는 인간의 총체적인 모습이 ‘매력적’인 것이다.
    실제로 작가를 만나본 사람은 그 사람의 ‘문학 세계’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작가의 ‘살아있는 호흡’을 접해본 사람은 이성적이 아닌 ‘직감적’으로 그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만남이 아무리 짧은 것이라 해도 그것은 ‘전면적’인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정신세계를 포함한 ‘직관적 이해’를 낳는다. 작가 사후 글만을 통해서 작가를 접하는 독자들은 아쉽게도 그러한 직감에 의한 전면적인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없다. 그러한 만남의 기회를 가지기 위해서는 누군가 작가를 대상화시켜서 기록해주어야만 한다. 그러한 작업은 그 위인이 살아있을 때 함께 지낸 사람만이 가능하다. 그의 살아있는 모습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 ‘평전’...고리끼가 본 톨스토이 이 책은 톨스토이가 가장 아끼던 작가 고리끼가 본 ‘말년의 톨스토이에 대한 회상기’이다. 이 책은 러시아의 가장 저명한 작가에 대한 또 한사람의 가장 저명한 작가의 ‘회상기’일 것이다. 톨스토이는 고리끼보다 40년 연상이었다. 이 책의 기록은 30대의 그가 70대의 톨스토이를 만나서 쓴 것이다.
    고리끼는 톨스토이를 무척 존경했다. 특히 그의 위대함에 감탄하는 때가 많았다. 그 정신세계의 깊이는 끝을 모르겠노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감탄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 그의 행동을 짜증스러워하기도 하고, 그의 견해에 반대하기도 했다. 실제로 고리끼가 완성한 문학세계는 톨스토이의 문학세계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한 위인의 정신세계가 깊고 넓음이 주변사람들과의 조화로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주변사람들과의 부조화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톨스토이도 마찬가지였다.

    톨스토이 책에서 볼 수 없는 톨스토이의 매력

    한 작가의 작품이 ‘정신의 산물’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톨스토이의 책을 읽으면 ‘그의 정신세계’를 읽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인간의 매력이라는 것은 ‘정신의 기록’으로만 표출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매력은 행동거지, 미소, 대화하는 말투, 사람을 대하는 태도, 말없이 서있는 뒷모습, 손짓, 사색하는 모습, 습관 등 기록되지 않은 것에서도 풍겨 나오기 마련이다. 그야말로 한 사람의 매력은 ‘온 몸’에서 ‘전면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와 마주서있는 인간의 총체적인 모습이 ‘매력적’인 것이다.
    실제로 작가를 만나본 사람은 그 사람의 ‘문학 세계’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작가의 ‘살아있는 호흡’을 접해본 사람은 이성적이 아닌 ‘직감적’으로 그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만남이 아무리 짧은 것이라 해도 그것은 ‘전면적’인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정신세계를 포함한 ‘직관적 이해’를 낳는다. 작가 사후 글만을 통해서 작가를 접하는 독자들은 아쉽게도 그러한 직감에 의한 전면적인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없다. 그러한 만남의 기회를 가지기 위해서는 누군가 작가를 대상화시켜서 기록해주어야만 한다. 그러한 작업은 그 위인이 살아있을 때 함께 지낸 사람만이 가능하다. 그의 살아있는 모습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 ‘평전’ 같은 것을 쓰는 경우는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 죽은 시체의 뼈에서 그의 살 냄새를 맡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위인들은 그러한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다. 톨스토이는 행운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것도 당대 최고의 작가였던 고리끼가 그런 글을 써 주었으니 말이다. 이 책에는 톨스토이 살아생전의 그의 모습이 위트 넘치면서도 진지하게 쓰여져 있다.

    당혹스러운 질문을 잘하는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상대를 난처하게 하는 얄궂은 질문을 하기를 좋아했다. 그가 하는 질문은 보통 사람이 잘 하지 않는, 혹은 하기를 꺼리는 질문이었다. 톨스토이는 체호프에게 어느 날 공원에서 이렇게 물었다.
    “자네 젊었을 때 오입을 많이 했었나?”
    이런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도 이렇게 상스러운 말투로. 체호프도 ‘지칠 줄 몰랐죠.“ 라고 대답했지만 적잖이 당황했던 모양이었다. 톨스토이는 이처럼 말이 거침이 없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내를 사랑하나?
    자네는 나를 좋아하는가?
    같은 질문도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서슴없이 해댔다. 이런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고 생각해보라. 매우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톨스토이의 면모는 가식 없이 진실한 대화를 하기를 좋아하는 그의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다.

    반엘리트주의적인 톨스토이

    세계 최고의 지성인답지 않게 톨스토이는 시장의 장사꾼이나 마차꾼처럼 냉소적이고 상스러운 말을 잘 썼다. 그의 이러한 말투는 심지어 상대방을 화나게 할 정도였다. 고리끼도 처음에는 그의 이러한 말투에 화가 났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그의 말투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가 입에 담을 수 없을 단어를 사용해 말하는 것은 오직 그것만이 더 정확하고 요점에 맞는 것이어서 그랬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이러한 표현은 ‘민중적’인 것으로써 ‘엘리트주의’를 싫어했던 그의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소탈하고 민중적’인 것을 선호했다. 톨스토이가 고리끼에게 호감을 가진 것도 빈민출신인 그가 매우 ‘민중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톨스토이의 반엘리트주의적 성향은 고리끼와의 대화에서도 느낄 수 있다. 톨스토이는 고리끼에게 이 책을 읽어보았는지 저 책은 읽어보았는지 확인해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상당히 많이 읽은 게 분명하군.
    이것 보게. 그러나 그것은 위험해.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통찰이며 가끔은 지식이 오히려 통찰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통찰은 관념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진실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라고 믿었던 톨스토이는 관념에 사로잡히게 하는 죽은 지식에 매우 회의적이었다.

    눈물 많은 톨스토이

    우리는 톨스토이 하면 신념에 찬 강한 ‘도덕주의자’로서의 그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그는 눈물 많고 웃음 많은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그는 고리끼에게 이런 말을 하며 눈물을 훔쳤다.
    “어느 가을 모스크바 수카리오트 문 근처 골목길에서 술 취한 여인이 도랑에 쓰러져있는 것을 본 적이 있지. 어떤 집 마당에서 흘러온 더러운 물줄기가 바로 그녀의 목과 등에 흘러내렸네. 그녀는 그 차가운 물 속에 누워 떨면서 중얼댔지. 젖은 몸을 꿈틀댔지만 일어나질 못하더군. 술에 취한 여인은 너무나 끔찍하고 혐오스러워. 그녀가 일어나도록 도와주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네. 너무나 싫었거든. 그녀는 너무나 미끌미끌하고 끈적거려서 만약 그녀를 만진다면 한 달 동안 내 손을 깨끗이 할 수 없을 것 같았네. 끔찍했어! 인도와 차도 사이의 돌에는 영리하게 보이는 회색 눈의 소년이 앉아 있었는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더군. 그 소년은 흐느끼면서 지치고 무기력한 말투로 ‘엄마, 엄마, 일어나’ 라고 계속 중얼댔어. 그녀는 팔을 움직이면서 툴툴대더니 머리를 들었다가 다시 그 흙탕물에 머리를 박았네.”
    이런 말을 하는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눈물을 닦고 웃으면서 손수건을 쳐다보더니 다시 눈물이 그의 주름살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나는 울고 있네. 나는 늙은이야. 참담한 일을 기억하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아. 자네, 자네도 인생을 살 테고 모든 것이 과거와 그대로일 걸세. 그러면 자네도 나보다 더 울겠지. 농부 여편네들의 표현을 빌자면 더 ‘질질’ 짜겠지.”
    이 같은 이야기에서 ‘위대한 작가’로서의 톨스토이가 아닌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나약한 한 노인으로서의 톨스토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따뜻한 피가 노년의 혈관에 계속 흘렀다는 것은 그가 위대한 작가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톨스토이가 믿는 하느님은 달랐다

    고리끼는 톨스토이를 삶의 진실 혹은 하느님을 찾아다니는 순례자로 보았다. 고리끼는 이렇게 증언했다.
    그는 평생 동안 손에 지팡이를 쥐고 수천 마일을 걸어 수도원을 찾아 한 성인의 유골을 보고 또 다른 것을 찾아다니는 순례자 같다. 철저하게 집도 사람도 물건도 소유하지 않는 순례자.
    그러나 톨스토이가 믿는 하느님은 달랐다. 톨스토이가 믿는 하느님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독교의 하느님이 아니었다. 고리끼는 심지어 그의 일기장에서 이런 대목을 발견하기도 한다.
    “신은 나의 욕망이다.”
    신을 찾고자 하는 것, 신을 믿고자 하는 것도 톨스토이 자신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톨스토이가 자신의 신념이나 종교에 관해서도 끊임없이 회의하고 고뇌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고리끼는 톨스토이가 믿는 하느님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과 같은 글은 고리끼가 엿본 하느님에 대한 그의 내면세계이다.
    그의 세계는 자신을 위한 것도 하느님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는 습관적으로 신에게 기도하지만 그 내밀한 영혼은 신을 싫어한다.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톨스토이

    고리끼는 톨스토이를 길가의 삐져나온 쭉정이, 돌부리에 비유했다.
    레프 니꼴라예비치 같은 사람은 길가의 쭉정이, 돌부리, 나무뿌리와 같다. 사람들은 길을 가다 그것에 걸려 넘어진다. 심지어는 그것에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 같은 사람이 없어도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점, 혹은 전혀 다른 세계를 보고 놀라는 일은 즐겁다.
    톨스토이는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걸려 넘어진 그 상처에 의해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모스크바에서 구한 새로운 톨스토이의 풍부한 사진

    책의 화보와 본문에 있는 70 여컷의 사진들은 국내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위해 모스크바에서 새로 구해온 사진들이다. 사진들은 톨스토이의 일상적인 생활모습을 독자들에게 충실하게 보여줌으로써 톨스토이를 보다 가까이 느끼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