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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파티아: 고대 그리스가 사랑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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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도서명 히파티아: 고대 그리스가 사랑한 여인
저자

마르자 드스지엘스카 지음 | 이미애 옮김

출판사 우물이있는집
정가 11,000원
발행일 2002년 09월 30일
사양 272쪽 | 363g
ISBN 9788989824084

"히파티아"는 고대 그리스 말기의 여성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다고 한다. 그녀는 당대 최고 수준의 수학자이자 최초의 저명한 여성 수학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뛰어난 강의 솜씨로도 유명했다. 그녀는 절제된 생활 태도와 깊이 있는 철학, 천재성으로 인해 명사, 정치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지만 당시 알렉산드리아를 다스리던 사령관 사이의 정치적 갈등 사이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책은 국내에는 처음 다뤄지지만 서구에서는 그녀의 죽음을 고대의 종말로 해석할 정도로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고대 여성철학자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페미니즘계에서는 성적 자유의 선구자 혹은 자유로운 여성 지식인으로, 계몽주의자들 내에서는 지적 탐구의 선각자 혹은 '마지막 그리스인'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히파티아에 대한 편견과 왜곡을 벗겨내고 그녀의 순교가 '고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 세계의 가치와 새로이 떠오르는 기독교의 진리와 로고스가 통합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소 생소한 이름의 학자이지만 우리가 미쳐 몰랐던 당대의 수학자가 여성이었으며 그녀가 이룩한 업적과, 당시에 사회에 미쳤던 영향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저자 : 마르자 드스지엘스카

폴란드 크라코우에 있는 야기엘로니안 대학(Jagiellonian University)의 고대 로마사 교수이며 저서로 『전설과 역사속의 아폴로니우스(Apollonius of Tyana in Legend and History)』 등이 있다.

역자 : 이미애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박사과정을 졸업(영문학 박사)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역서로 J. R. R. 톨킨의 『반지전쟁』(예문, 공역)과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예문)이 있다. 논문으로 「콘라드 작품의 로만스적 요소」「What Makes Us Read Jane Austen?: The Narrative Development in Austen's Works」「메타 픽션과 역사적 상상력」이 있다.

    성스러운 사순절의 어느 날 히파티아는 마차에서 낚아 채여 벌거벗겨졌으며 교회로 끌려가서 야만적이고 무자비한 기독교 광신도들에 의해 비인간적으로 살육되었다. 그녀의 살은 날카로운 조개껍질로 뼈에서 도려내어졌으며 떨리는 팔다리는 화염에 던져졌다.

    최초의 저명한 여성 철학자 히파티아

    우리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하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남성 철학자들만을 떠올린다. 당시에 여성철학자가 있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대 철학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성철학자 못지않았던 여성철학자들을 발견하게 된다. 히파티아, 아레테, 소시파트라, 애스클레피제네이아, 올림피오도루스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 중에서도 히파티아는 '신플라톤주의'를 완성한 당시의 대표적인 여성철학자로 암모니우스, 다마스키우스, 심플리우스, 아스클레피우스 등 당대의 쟁쟁한 고대철학자의 스승이다. 그녀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그녀가 살았던 알렉산드리아는 물론 그리스 전역에서 뜻있는 청년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고대 그리스의 신화적 인물로 '아름다움과 지혜'의 여신으로 추앙받아 왔다. 서구에서 히파티아는 매우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성의 보통명사가 된 지 오래다. 특히 당대 최고 지성인 그녀에 대한 살인은 역사 속에서 고대 광명의 종말과 중세 암흑의 도래를 의미할 만큼 중요한 사건으로 취급되어왔다.

    당대의 가장 뛰어난 수학자 히파티아

    이 책은 국내에서 히파티아를 처음 소개하는 책이다. 그러나 히파티아는 당대의 가장 뛰어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저서는 전해지는 것이 없으나 많은 학자들이 그 유명한 프톨레미의 [수학원리]와 [간단한 도표]와 디오판투스의 책들도 히파티아가 편집, 저술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녀는 아폴로니우스에 대한 수학 논문도 썼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대의 유명한 수학자들은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가 있을 때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녀는 그들을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그녀는 천문학에도 박학다식할 뿐 아니라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에 물시계로 실험을 할 만큼 과학적인 사고를 가진 지식인이었다. 당시 천문학은 곧 점성술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었고 그녀의 천문학에 대한 관심과 실험은 살해당할 당시 적들에 의해 '마술을 부리는 마녀'로 중상되었다.

    페미니스트들의 추앙을 받는 히파티아

    또한 히파티아는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는 인물이다. 페미니스트들이 그녀를 추앙하는 이유는 이렇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당대의 어떤 남성보다 뛰어난 지적 능력과 미모를 지니고 있었던 히파티아는 철학자 이시도르와 결혼하고도 많은 저명한 남성들과 자유로운 '연애적 교우 관계'를 가졌다. 당시 기독교 대주교였던 키릴루스는 히파티아의 애인이었던 제독 오레스테스와 갈등관계에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종교권력자인 키릴루스와 정치권력자인 오레스테스가 갈등을 빚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키릴루스는 히파티아를 '간통' 혐의로 살해한다. 페미니스트들에게 이렇게 히파티아는 남성보다 훨씬 뛰어난 지적인 여성으로, 자유연애를 구가한 선도적인 여성으로, 그 때문에 종교권력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선구자로 추앙받게 된 것이다.

    맹목적인 기독교에 항거한 전사로서의 히파티아

    히파티아는 맹목적인 기독교 권력에 항거한 전사로 알려져 있다. 히파티아는 이교주의의 대명사인 것이다. 히파티아가 살았던 고대 그리스 말기 알렉산드리아에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충돌하고 있었다. 히파티아가 이교주의의 대명사가 된 것은 당시의 두 종교 간의 갈등에서 그녀가 유대교를 옹호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키릴루스 대주교는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을 공공연히 탄압했고 히파티아는 그에 저항했다. 이로써 히파티아는 강제적인 종교권력에 맞써 싸우는 전사로서의 이미지를 획득했다. 대주교 키릴루스로서는 당대의 저명한 인사들과 폭넓은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히파티아가 부담이었고, 그로서는 히파티아를 살해하지 않고는 자신의 종교권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기존의 많은 역사가들은 히파티아 살해행위를 이교주의가 끝나고 기독교적 암흑시대가 시작된 사건으로 평가하였다.

    히파티아의 비극적인 죽음

    히파티아가 이처럼 신화화 된 것은 그녀의 죽음이 매우 비극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난 후 불에 타 죽었다. 그녀는 생전에 많은 추종자와 친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녀는 뛰어난 강의로 정평이 나 있었고 깊이 있는 철학과 그 천재성으로 인해 많은 부호, 명사, 정치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가히 한 시대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참혹한 죽음은 생전의 그녀가 누리던 명성과 대비되었다. 그녀의 끔찍한 죽음은 후세인들에 의해 순교자의 이미지를 획득하였다.

    히파티아에 대한 문학적 신화화

    이처럼 히파티아는 '아름다움과 지혜'의 화신으로서, 그녀의 죽음은 계몽주의자들에게는 '이성의 빛'의 소멸로, 페미니스트에게는 '남성보다 우월한 여성'의 살해로, 반기독교인에게는 '독단적 교리'에 저항한 순교자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저자 마르자 드스지엘스카는 히파티아에 관한 모든 문헌들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후대의 문학가와 역사가들이 그녀를 어떻게 신화화했는지를 고증함으로써 히파티아에 대한 편견을 수정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히파티아의 이미지는 후세 사람들에 의해 문학적으로 가공되었으며, 신화화 되었다. 그녀가 엄밀한 문헌 고증을 통해 분석한 왜곡은 5가지이다.

    히파티아에 대한 편견의 극복

    첫째, 히파티아가 당대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임에는 분명하나 그녀를 미의 여신으로 신화화한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여성이다. 알렉산드리아는 원래 이집트 땅이었으나, 당시에는 그리스의 식민지였다. 그녀는 식민지 출신의 철학자였다. 외모 역시 라파엘이 그린 것처럼 그리스인의 외모가 아니라 이집트인의 외모였을 것이다(화보 참조). 심지어 후세의 문학가들은 그녀의 벌거벗겨져서 살해되는 장면을 에로틱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러한 신화화가 문학적으로 꾸며진 것일 뿐 고대문헌을 통해서는 전혀 발견되는 바가 없음을 증명한다.
    둘째, 히파티아가 살해된 나이는 알려진 것처럼 젊었을 때가 아니라 60세 정도였을 것이라고 증명한다. 제자 시네시우스와 주고 받은 편지를 통해서 그녀가 제자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것을 반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녀의 살해 장면은 에로틱하기는커녕 힘없는 노철학자를 잔인하게 죽이는 끔찍한 장면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셋째, 히파티아가 자유연애를 구가했다는 것에도 반론을 제기한다. 저자는 히파티아가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살았으며, 누구와도 연애한 바가 없다는 것을 밝힌다. 사령관 오레스테스와의 관계도 친분이 있고 정치적으로 그를 지지하는 관계였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히파티아가 자유연애의 선구자라는 것 역시 문학적인 허구라는 주장이다.
    넷째, 히파티아는 유대교인이 아니었다. 본질적으로 히파티아는 종교적 희랍주의자라기 보다는 문화적 희랍주의자였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는 반기독교인도 아니었다. 그녀는 많은 기독교인들과 친분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제자들에게 반기독교적 교설을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아끼는 제자 시네시우스가 후에 기독교 대주교가 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녀는 유대교 신자였기 때문에 희생된 것이 아니라 종교권력자 키릴루스와 정치권력 사이의 오레스테스 사령관과의 갈등에서 오레스테스의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희생되었다.
    다섯째, 히파티아의 순교는 ‘고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 세계의 가치와 새롭게 떠오르는 기독교의 가치가 통합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견해는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고대가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죽음을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히파티아의 죽음, 그 의미

    이 모든 편견의 수정에도 불구하고 히파티아는 여전히 역사 속에 남을 위대한 철학자이다. 그녀의 위대함은 고대 그리스 말의 철학사를 그녀의 제자들이 찬란하게 장식하고 있다는 점으로도 증명된다. 당대의 명망가들이 그녀를 존경했던 것은 외모의 아름다움과 성적 자유 때문이 아니라, 완벽한 성적 금욕과 절제된 생활, 모든 상황에서 예의를 준수한 꼿꼿한 철학자로서의 면모 때문이었다. 이 책을 통해 히파티아는 신화속의 인물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 속의 인물로 태어났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희생된 한 천재 철학자의 비극적 운명을 통해서 역사와 존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역사가 어떻게 후대의 호사가들에 의해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