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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광포한 이 세상에서 : 러시아대표단편문학선-세계단편문학선집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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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도서명 아름답고 광포한 이 세상에서 : 러시아대표단편문학선-세계단편문학선집02
저자 안드레이 플라타노프 등저/최병근 역
출판사 써네스트
정가 11,000원
사양 288쪽 | 385g | 150*220*20m
ISBN 9788991958838

써네스트 세계단편문학선 두 번째 책 –러시아
 
세계문학에 있어서 러시아 문학의 위치에 대해서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단편 문학은 대한민국에서 계속 푸대접을 받았다. 체호프의 단편 정도만이 그나마 지속적인 인기를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러시아 문학에 있어서 단편문학의 힘은 위대하다. 이제 우리는 그 위대한 힘을 <세계단편문학선 02- 러시아대표단편문학선>에서 보기로 한다.
이 책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푸시킨, 체호프 고골의 대표 단편선은 물론 그 이후의 다소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과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까지 다양하게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소개되는 알렉산드르 쿠프린의  <석류석 팔찌>가 있다.
쿠프린은 러시아에서 푸시킨만큼 수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어서 국민작가로 불리고 있지만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이다. 이번 기회에 그의 작품의 느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단편 문학으로 처음 노벨상 수상 

얼마 전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캐나다 여성작가 앨리스 먼로가 그 영광의 주인공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그녀가 단편소설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언론은 그녀를“캐나다의 체호프”라고 평했다. 이러한 평가는 먼로와 체호프의 작품세계가 유사하다는 점 외에도, 단편소설 분야에서 역대 최고의 작가가 안톤 체호프라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반인들은 러시아문학하면 보통 <안나 카레니나>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같은 장편소설을 떠올린다. 실제로 근대문학의 총아였던 소설, 그 가운데서도 장편이라는 소설의 형식을 그 어느 나라보다 탁월하게(길고 심오하게!) 완성시킨 나라는 아마도 러시아일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나라이자, 동시에 체호프의 나라이기도 하다. 즉, 러시아는 나름의 단편소설의 전통과 역사를 발전시키며, 푸시킨, 고골, 체호프, 부닌, 파우스토프스키 등과 같은 수많은 단편소설의 거장들을 배출해냈다.


일반인과 전공자들 모두를 위한 러시아 단편 모음집

이 책은 러시아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유명한 단편소설들을 선정하여 대학의 전공자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쉽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도록 우리말로 옮겨놓은 단편모음집이다. 총 10편의 작품을 선정하였는데, 이때 개별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인지도나 문학사적 위상은 물론, 역자의 수년간의 대학교 수업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독자(대학생들)의 반응 또한 고려하였다. 예를 들어, 이반 부닌의 수많은 단편 가운데 <추운 가을>을 작가의 대표작으로 선정한 이유는 이 작품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아무튼 러시아의 근현대를 통틀어 훌륭한 단편소설을 많이 남긴 작가들을 간추린 다음, 그 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대표작을 번역하였다.

알렉산드르 푸시킨 Alexander Pushkin (1799-1837)
러시아의 시인 ․ 소설가 ․ 극작가. 모스크바 출생. 러시아 근대문학의 아버지. 부친은 퇴역 장교로 문필활동을 했으며, 유서 깊은 명문귀족의 후손이었고, 그의 모친은 표트르 대제(大帝)의 총신 한니발의 증손녀로 아프리카인의 피를 이어받았다. 유년시절에 카람진, 주코프스키 등 러시아 낭만주의 시인들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 1811∼1817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의 리체이(귀족전문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 곳의 자유주의적 기풍과 미래의 데카브리스트(귀족혁명주의자)들과의 교유가 그의 사상형성에 기반이 되었다. 리체이를 졸업한 1817년부터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외무성에 근무하면서, <녹색 램프> 등 문학서클 활동에 참가해 농노제 타도 등 자유주의 사상을 피력하는 작품을 발표하는데, 당대의 혁명적 사상가였던 차다예프에게 보내는「차다예프에게」(1818년)와「농촌」(1819년) 등 푸시킨의 초기 시들이 이 무렵에 완성된다. 1820년에 푸시킨은 최초의 장시(長詩)『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완성하는데, 같은 해에 정치적인 시들이 문제가 되어 남부 러시아로 유배되고, 키시뇨프와 오데사 등에서 생활한다. 푸시킨은 이 무렵에 장시『카프카스의 포로』(1822년)와『바흐치사라이의 분수』(1823년) 등 낭만주의적 특성이 강한 작품들을 썼다. 1825년 12월 데카브리스트들의 봉기가 실패한 이후, 푸시킨은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사면을 받고 수도로 귀환해, 다시 문단활동에 의욕적으로 참여한다. 미완성 소설『표트르 대제의 흑인 노예』(1827년), 장시 『폴타바』(1828년)가 이 시기에 완성된다. 1830년, 콜레라가 창궐하는 바람에 발이 묶여 어쩔 수 없이 석 달을 보냈던‘볼지노의 가을’부터 푸시킨은 창작활동의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이 해에 중편『벨킨 이야기』를 탈고하고, 1823년 시작한 운문소설『예브게니 오네긴』도 완성한다.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푸시킨은 중편『스페이드 여왕』(1834년)과 장편소설『대위의 딸』(1836년) 등을 완성하면서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초석을 쌓았다. 1837년 1월 27일 푸시킨은 사교계에서 아내 나탈리아와 염문을 뿌리던 프랑스 망명귀족 단테스와의 결투에서 부상을 입고, 이틀 후 38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이 결투는 명백히 그의 진보적인 사상을 두려워했던 전제정권이 짜놓은 함정이었다고 한다.“푸시킨은 우리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처럼 근대 이후 러시아 문학의 모든 장르와 유파는 모두 푸시킨에 의해 정초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니콜라이 고골 Nikolai Gogol (1809-1852)
러시아의 소설가•극작가. 우크라이나 폴타바 현의 소로친치 출생. 폴란드-우크라이나계 하급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문학과 그림, 연기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으며,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는 당시 러시아제국의 수도였던 페테르부르크로 올라가 말단 관료 생활을 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고골의 꿈은 진정으로 국가와 시민에 봉사하는 훌륭한 관료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도에서의 관료생활은 순탄치 않았으며, 그이후로 인류에 봉사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작가라는 사실을 깨닫고, 본격적인 창작의 길에 접어든다. 고골은 고향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쓴 자신의 첫 작품집 『지칸카 근처 마을의 야화』(1931~32년)가 인정을 받으면서 평론가들로부터‘러시아문학의 새로운 주인공’이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이어 1835년에는「비이」,『타라스 불리바』등 낭만주의적 색채를 띤 단․중편소설들을 묶은 작품집『미르고로드』와‘페테르부르크 이야기’를 담은 작품집『아라베스크』을 연이어 출간하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이어간다. 특히 1836년 4월에는 희곡『검찰관』이 황제의 특명으로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 극장에서 초연되어 열광적인 갈채를 받게 된다. 고골의 대표적 단편소설인「코」(1836년)와「외투」(1842년)는 부패한 러시아 사회에 대한 고발이며, 특히 러시아 관료주의에 대한 냉혹한 풍자인데, 이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러시아의 비판적 리얼리즘의 전통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36년 이후 고골은 관제 비평가들을 비롯한 보수 세력들의 극렬한 비난에 시달리게 되면서, 로마 등 주로 외국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게 된다. 이 시기에 쓰인 장편소설『죽은 혼』의 1부는 고골의 문학적 역량이 총집결된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1842년 출판돼 문단의 절대적인 호평을 받는다. 그러나 그 후 다시 해외에서 보낸 십여 년간의 세월동안 작가는 커다란 정신적인 고통을 겪게 된다. 『죽은 혼』의 2부를 집필하기 시작하나 실패하고, 결국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단식을 단행하기도 한다. 1852년 푸시킨과 더불어 러시아 근대문학을 개척한 작가 고골은 결국 43살의 나이로 모스크바에서 생을 마감했다.

안톤 체호프 Anton Chekhov (1860-1904)
러시아의 소설가 ․ 극작가•의사. 러시아 남부 항구도시 타간로그 출생. 조부는 돈을 벌어 자유의 몸이 된 농노였고, 아버지는 타간로그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다. 포악한 성격의 부친이 파산하여 모스크바로 도망가고, 가족이 해체되는 불행한 유년을 보내면서도 체호프는 고학으로 중학 과정을 졸업하고 모스크바대학 의학부에 입학한다. 체호프는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벼운 콩트작품을 잡지에 기고하면서 작가로서의 길을 시작하게 되는데,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관리의 죽음」(1883),「카멜레온」(1884),「애수」(1885) 등과 같은 뛰어난 단편들을 발표하며 유명한 단편 작가가 되었다. 그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개업의로서 의료 활동도 병행했다. 가난한 유년과 청년 시절의 체험은 체호프를 책 속에 삶을 그리는 작가로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그는 정신적 행복에 앞서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행복의 토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는 가난한 민중들에게 자신의 의술을 베푸는 것 외에, 도서관, 극장, 병원, 학교 등 공공기관의 건설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직접 참여도 했는데, 이러한 사회적 토대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정신적 행복 또한 커진다는 그의 굳은 신념 때문이었다. 그의 참여 속에 모스크바에 최초의 도서관이 건립되었고, 그의 노력 끝에 모스크바에 피부 전문 병원이, 그리고 모스크바 근교에 농민의 자제들을 위한 학교가 세 곳에 문을 열었다. 실제로 체호프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보다 의학적 지식에 훨씬 긍지를 가졌다고 하며, “내 직업은 의사예요. 가끔 시간이 날 때면 글을 쓰기는 하지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891년 대흉작으로 극심한 기아가 발생했을 때, 체호프는 기아구제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봉사활동을 펼쳤으며, 1892년 6월에 콜레라가 창궐하자 톨스토이, 코롤렌코 등과 함께 무료 진료와 학교 건립 등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바쁜 와중에서도 체호프는「상자 속 인간」,「6호실」, 『갈매기』,등과 같은 대표작을 이 무렵에 완성한다. 1898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공연한 희곡『갈매기』가 대성공을 거둔 뒤, 지병인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얄타 지방으로 거처를 옮긴 체호프는 이곳에서 주로 희곡 창작으로 시간을 보낸다. 이‘얄타 시기’에 나온 작품으로는『바냐 아저씨』,『세 자매』,『벚꽃동산』등 희곡작품과 유명한 단편「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등이 있다. 1901년에는 여배우 크니페르와 결혼하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1904년 6월 체호프의 병세는 극도로 악화되었고, 독일 남서부 삼림지대인인 슈바르츠발트에 있는 조그만 요양소로 옮겨져, 그 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반 부닌 Ivan Bunin (1870-1953)
러시아의 시인•소설가. 러시아의 남부도시 보로네쥐 출생. 영락한 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볼셰비키 혁명에 부정적이었던 그는 1920년 프랑스로 망명했으며 1953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1933년에는 러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부닌은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지만, 그가 보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발휘한 장르는 단․중편소설이었다. 그 가운데「안토노프카 사과」,「마른 골짜기」,「형제」,「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아들」,「가벼운 숨결」,「창의 꿈」등이 부닌이 혁명 이전에 발표한 주옥같은 단편소설들이다. 사랑을 주제로 한 많은 단편소설에서 부닌은 무엇보다도 여성과 자연에 내재된 아름다움의 의미와 사랑의 신비로움을 표현하려 했었다. 하지만 이는 인간 인식의 영역밖에 존재하는 것임을 확인할 뿐이며, 이런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있는 실체로서의 여성 또한 부닌에게는 어떻게 규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특별한 존재로 인식된다. 부닌이 여성과 사랑의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은 이전의 문학적 전통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부닌은 자신의 문학적 스승인 톨스토이나 체호프와는 달리, 이러한 문제들을 사회적 환경과 당대의 모럴로부터 독립된, ‘진공’의 상태에서 바라본다. 따라서 여성과 사랑에 대한 부닌의 생각에는 일정정도 이상화와 낭만적 요소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여하튼 부닌에게 있어서 사랑은 인간 삶의 궁극적인 의미이다. 부닌은 소설의 모든 주인공들에게‘무엇 때문에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그들은 다름 아닌 사랑 속에서 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확인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사랑은 인간이 지상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다. 어린 고등학생(『미차의 사랑』), 젊은 장교(『엘라긴 장교의 삶』), 퇴역 장군(「파리에서」) 등 창작의 전․후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주인공들은 나이와 사회적 지위를 다르지만, 심리적 상태에서는 모두 동일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힘겨운 고독 속에서 살아가던 이들은 사랑을 통해 자신에 대한 확신과 삶에 대한 희망을 확인해간다. 부닌의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낙엽은 지고』(1901) 중편소설 『시골마을』(1910), 에세이집 『저주받은 세월』(1925), 자전적 장편소설 『아르세니예프의 생애』(1930)와 단편소설집『어두운 오솔길』(1946) 등이 있다.「추운 가을 」(1944)은 이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다.

알렉산드르 쿠프린 Aleksandr Kyprin (1879~1938)
러시아의 작가. 러시아 남부 펜자 출신. 가난한 관리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10년의 군사학교 교육을 받고, 4년간 보병 연대에 근무하다 전역한 쿠프린은 러시아 각지, 특히 남부 러시아의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여러 직업에 종사했다. 1900년을 전후로 그는 체호프, 고리키 등과 친교를 맺는데, 특히 고리키의 소개로 문학단체인‘즈나니예(지식)’그룹의 일원이 된다. 작가로서 그는 1905년 장편소설 『결투』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혁명이 일어나자, 1919년에 해외로 망명한 그는 주로 파리에서 생활하며 17년간을 외국에서 보내고, 1937년 병든 몸으로 러시아로 귀국한다. 그가 작가로서 가장 정력적으로 활동한 시기는 1905년에서 1907년까지, 즉 1차 러시아혁명이 발발한 후, 러시아 사회가 변화에 대한 희망으로 한껏 부풀어 있던 시기였다. 반면 망명 이후에는 작품 활동이 저조해졌고, 몇몇 작품 외에는 특별한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그는 러시아 비판적 리얼리즘의 계열에 속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 대부분은 작가 살았던 당대의 사회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몰로호」는 부르주아적‘진보’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고,「결투」는 제정시대 군대에 대한 폭로이며,「구덩이」는 매춘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쓰인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체호프와 고리키, 특히 톨스토이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는 삶의 현상을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한 작가로, 자기가 직접 체험한 것만을 작품에 옮겼다. 그의 독자들은 민주주의적 성향의 광범위한 대중들이었다. 그의 작품에는 러시아의 평범한 지식인들, 즉 가슴이 따뜻하고 양심적이며 삶의 모순으로 인해 쉽게 상처를 받는 사람들과 다채로운 형상의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그는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어떤 집단 심리와 직업 심리를 묘사하고자 노력했던 작가이다. 그의 창작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낙관주의와 인도주의, 뛰어난 묘사력, 풍부한 문체는 그를 오늘날에도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레오니드 안드레예프 Leonid Andreev (1871~1919)
러시아의 극작가•소설가. 러시아의 남부 도시 오룔 출생.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을 거쳐 모스크바 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여러 신문에 풍자적 정론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고리키를 알게 되면서 출판사‘즈나니예(지식)’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 그룹에 참여한다. 고리키와 톨스토이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바 있는 초기 작품들은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잇는 작품들로, 당대의 국가체제와 재판제도, 교회 등을 비판하고 소시민 사회의 비정함과 위선을 폭로하는 내용이다. 특히 이 작품들에서는 억압받는 자들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이 잘 나타나고 있는데, 작가는 사회악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혁명적인 수단보다는 도덕적인 정화와 인간적인 화해에 호소하고 있다. 한편 이 초기 작품들에서도 인간 이성에 대한 불신과 인간의 맹목적이고 파괴적이며 동물적인 본능에 대한 공포가 표현되고 있다(「심연」도 그중 한 작품이다). 그는 일체의 폭력을 거부하는 것에서 잘 드러나듯, 사회적,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언제나 이 문제들을 추상적인 도덕의 관점에서 해결하려 했다. 1905년 1차 러시아혁명을 전후로는 혁명을 긍정적으로 다루는 작품들을 쓰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는 보통 혁명가를 무정부주의자로, 혁명을 허무주의적 반란으로 묘사되는 작품들을 발표한다. 또 후기로 갈수록 그의 작품들은 비관적인, 때로는 염세적이기까지 한 색채를 더해 간다.『인간의 삶』을 비롯해, 연작으로 쓰인 일련의 희곡들은 인생이란 과거의 무의미한 반복에 지나지 않고 세계는 인간이 이성적으로 결코 파악할 수 없는 불가지의 대상이란 것을 보여준다. 1차 세계대전과 1917년 혁명을 배경으로 쓰인 말년의 작품들은 아이러니와 그로테스크, 환상 등 표현주의적인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나자, 망명하여 핀란드에서 사망했다. 대표작으로는 소설『사탄의 일기』와『붉은 웃음』, 희곡『인간의 삶』, 『뺨 맞는 그 자식』등이 있다.

미하일 숄로호프 Mikhail Sholokhov(1905~1984)
러시아 소설가. 돈강(江) 중류 지역의 베쉔스카야라는 카자크 마을에서 출생. 점원, 영지 관리인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던 랴잔 출신의 아버지와 카자크 혈통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나지움에 다니던 숄로호프는 1918년 고향에 밀어닥친 혁명의 와중에서 학업을 중단하고 1922년 모스크바로 가서 회계원, 가옥 관리인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신문에 짧은 글을 투고하다가 1926년에 다시 낙향하여 고향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다. 돈강 지방의 순박한 농민들의 삶이 볼셰비키 혁명과 내전을 겪으면서 산산이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일련의 단편 속에 사실적으로 그려낸 『돈 지방 이야기』(1926) - 「망아지」가 이 작품집에 포함되어 있다 - 로 숄로호프는 일약 문단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 후 돈 지방 카자크 촌락을 중심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혁명과 내전을 거쳐 1922년까지 그들이 겪었던 비극적인 역사와 운명의 변전을 그린 대서사시 『고요한 돈강』(1928~1940)으로 숄로호프는 스탈린 상을 두 번 탔고(1935년과 1941년에), 1965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두 작품에는 역사와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 인간과 선의 승리에 대한 궁극적 믿음을 전제한 휴머니즘이 진하게 느껴진다. 이밖에 주요작품으로 1920~30년대 농촌 집단 농장화의 지난한 과정을 그린 『개간된 처녀지』(1932~1959)와 제2차 세계대전 종군기인 『그들은 조국을 위해 싸웠다』(1943~1959) 등이 있다.

콘스탄틴 파우스토프스키 Konstantin Paustovsky (1892~1968)
러시아 소설가. 모스크바 출생. 모스크바 국립대학 재학 시절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위생병으로 참전했으며, 내전 기간 중에는 키예프, 오뎃사, 카프카즈, 모스크바 등지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그에게 최초의 문학적 성공을 가져다준 중편소설 『까라 부가즈』(1932년)에서는 사회주의 건설의 주제를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저널리즘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로 기술하고 있다. 이후 30년대에 연이어 발표한 『콜키스』(1934), 『흑해』(1936), 『북쪽지방 이야기』(1938), 『여름날』(1937), 『메쇼라 지역』(1939), 『이삭 레비땅』(1937) 등의 중편소설들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 역사와 인간, 예술가의 생애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낭만주의적 정조 속에 인간의 내밀한 심리를 시적 언어로 그려내는 그의 독특함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파우스토프스키의 작품 세계는 당시 소비에트 문단의 지배적인 경향과는 거리가 있는 독자적인 세계였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도 파우스토프스키는 자신의 이러한 입장을 고수하며 「하얀 무지개」,「비오는 새벽」(1945),「10월의 밤」(1946)과 같은 서정적 단편들 속에서는 전후(戰後)에, 삶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회복해 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잔잔히 그려내고 있다.「눈」(1944) 역시 이러한 작가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후에 파우스토프스키는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인생에 대하여』(1945-63)의 집필을 시작한다. 『머나먼 시절』(1945),『불안한 청춘』(1955),『불확실한 시대의 시작』(1957),『큰 기다림의 시간』(1959), 『남(南)으로의 질주』(1960), 『방랑의 책』(1963) 등 6부작으로 이루어진 ‘대서사시’를 통해 작가는 혁명 이후 격동의 소비에트 시대를 인간의 가치와 도덕적 신념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자전적 소설의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Andrey Platonov(1899~1951)
러시아의 시인•극작가•소설가. 러시아의 남부도시 보로네쥐에서 출생. 아버지는 그곳 철도국 노동자였으며, 플라토노프는 10남매의 장남이었다. 그는 보로네쥐 시내에 있는 교회부설 학교에 입학하지만, 부모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며 가사를 도와야 했던 힘든 유년기를 보냈다. 작가가“삶이 나를 어린아이에서 바로 성인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유년의 경험은「귀향」의 페트루슈카의 모습에도 나타난다. 철도종합기술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하며 지역 신문사 기자로도 활동했던 때가 작가의 창작 초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는 철학 에세이와 공상과 학류 단편소설이 작품의 주류를 이루는데, 이 작품들에서는 러시아 혁명에 고무된 젊은 프롤레타리아 출신 작가의 세계변혁에 대한 파토스를 느낄 수 있다. 1922년 대학을 졸업한 플라토노프는 보로네쥐 현 소속 토지개량 기술자로 일하게 된다. 1921년에서 1922년 사이, 러시아 남부지방을 휩쓸며 60만 명 이상의 인명을 앗아간 대기근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후 1927년 모스크바로 이주해가기까지 플라토노프는 토지간척 사업과 댐과 발전소 건설에 참여하여 민중들의 물질적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매진한다. 1926년에서 1927년 사이, 플라토노프는 보로네쥐에서 모스크바로, 다시 탐보프로 전근 명령을 받게 되고 이때 소비에트 관료주의 세계와의 마찰이 심화된다. 이즈음부터 30년대 전반기까지 집중적으로 쓰인 일련의 중․장편 소설들은‘풍자적 철학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다.『그라도프 시(市)』,『비밀스러운 인간』,『체벤구르』,『구덩이(코틀로반)』,『행복한 모스크바』,『잔』등에서 작가는 혁명 이후 소비에트 사회의 현실과 미래를 독특한 사상과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1930년대 중반 이후 플라토노프의 작품은 사회 풍자성이 크게 약화되고 문체 또한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탈바꿈한다. 1929년과 1931년에 각각「회의하는 마카르」와 『저장용』의 사회비판적 내용으로 비평계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았던 전력과 소비에트 예술계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공식화가 사회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시기에 쓰여진 「프로」,「뽀뚜단 강(江)」,「아름답고 광포한 세상에서」,「조국에 대한 사랑 혹은 참새의 여행」등과 같은 주요 단편소설에서는 사랑, 자연, 고향과 같은 보편적 주제를 다루는 작가의 성숙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귀향」은 1946년「이바노프의 가족」이란 제목으로 처음 발표되었는데, 이 작품 역시 주인공 이바노프의 우유부단한 모습이 문제시되어 당대 비평계로부터 정치적 오류라는 비판을 받는다.「귀향」에서 플라토노프는 당대 문단에서 전선(戰線)의 상황에 비해 소홀히 다뤄졌던 후방(後方)의 고통, 그리고 주인공 이바노프의‘심리적 귀향’의 여정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옮긴이 최병근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교를 졸업하고,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러시아현대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 현재 안양대학교 러시아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안양대 러시아•중앙아시아연구소 소장과 신문사 주간을 맡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검찰관』(웅진씽크빅, 2007년), 『귀향 외』(책세상, 2002년), 『러시아문학 앤솔러지2』(문원출판, 2002년) 등이 있다.

    책속에서

    나는 그와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말체프의 친구는 아니었다. 그가 내게 관심을 보이거나 날 배려해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운명적인 고통에서 그를 지켜주고 싶었고, 한 인간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냉엄하게 파멸시켜버리는 숙명의 힘에 분노가 치밀었다. 왜 내가 아닌 말체프 씨였을까? 다름 아닌 그를 파멸시켰다는 점에서 이 운명의 힘은 비밀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산술적인 계산과 이성적인 논리라는 것이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환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고, 이런 치명적인 힘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택된 사람들은 파멸시키는 상황을 나는 직접 목격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힘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나는 내 안에서 자연의 외적인 힘과 우리 운명에는 존재하니 않는 그 어떤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고유한 특징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울화가 치밀었고, 그래서 이 자연과 운명에 저항하기로 결심했다.

    - <아름답고 광포한 이 세상에서> 중에서